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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구원, 믿는 자에게 따놓은 당상인가? 조회수 : 3618
  작성자 : 최대복목사 작성일 : 2012-06-05


본문: 엡2:5-8 /

제목: 구원, 믿는 자에게 따놓은 당상인가?





도입/ Introduction :



지난 주에 저의 저서 “너희가 그러고도 천국 갈 줄 아느냐”를 읽은 독자들에게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주로 책을 통해 너무 은혜를 받고 다른 사람에게 사서 선물을 하고 싶은데 어디서 그 책을 살 수 있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그 중 강원도 원주에서 책을 읽은 독자의 말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분은 원주 전 시원이었던 분으로 지난 1년 반 동안 기독교 서적을 350여권을 정독을 하셨다고 했습니다.





최근에 이라는 책을 사서 읽어보았다고 합니다.


그 책 내용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사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슨 죄를 짓더라고 구원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다만 우리의 상급과만 관련이 있을 뿐이다."


이런 내용이었는데, 때때로 죄를 범하는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바라보니, 얼마나 그 책이 위로가 되었는지 모르겠더랍니다. 그래서 그 책을 10권을 사서 주위에 아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그 분에게 <너희가 그러고도 천국 갈 줄 아느야>라는 책을 선물해 주었다고 합니다.


저의 책을 단 숨에 읽고 나서, “아 내가 큰 죄를 지었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래서 주변 분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이라는 책 10권을 모두 회수하고 저의 책 <너희가 그러고도 천국 갈 줄 아느냐>라는 책을 사서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분이 말하기를, “제가 목사님의 책을 읽지 않았다면 저의 영혼이 과연 어떻게 되었을지 아찔한 생각이 듭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분이 말하기를 제가 지난 1년 반 동안 읽은 350권의 기독교 서적 중에서 목사님 책이 가장 충격적이었고 가장 감동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야 저들의 잘못된 구원관에서 벗어나 참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하기에 저는 하나님과 약속을 했습니다. 제가 목사님 책을 천 권을 사서 사람들에게 배포를 하겠다” 고. 지금은 경제적 사정이 여의치 않지만 사정이 좋아지는 대로 가장 우선적으로 그 일을 하시겠다면서 제게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제게 하는 말이, “저는 믿는 자에게 구원은 따놓은 당상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책을 읽고 나서야 저의 구원관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구원 받은 것이라고 가르치니 그렇게 알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목사님의 책이 계속적으로 나와서 한국 교회의 잘못된 구원론을 바꾸어 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을 이야기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본론/ body



저에게 전화를 주신 이 독자 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에 대해 크게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큰 오해 중에 하나가 "바로 구원은 이미 받은 것이고 따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자꾸만 성경적 근거로 대는 말씀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입니다.




우리 본문 말씀을 한 번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 중에 우리로 하여금 오해케 하는 요절이 바로 5절과 8절 말씀입니다.




5절과 8절 말씀을 다시 한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뭐라고 되어 있지요?



5절 후반부에,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우리말 개혁 성경을 보면, 구원 받은 시점이 언제로 되어 있습니까?


과거시제로 되어 있습니다. 과거에 이미 구원은 얻은 것처럼 번역되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영어성경을 보면 모든 번역이 다 현재 완료 시제로 되어 있습니다


You have been saved.



8절 말씀도 보겠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우리말 개역 성경을 보면 여기서도 구원을 얻은 시점이 과거시제로 돼 있습니다.


그러나 8절 말씀은 5절 말씀과 같이 두 번 다 동일하게 현재완료시제로 쓰였습니다.


영어로 똑 같은 말씀의 반복입니다. à You have been saved.





여러분이 잘 아시지요? 현재 완료 시제는 언제 쓰입니까?


과거부터 진행되어져 온 일이 이제 막 완료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계속되어져 오던 일이 앞으로도 계속되어질 것을 암시할 때 쓰는 시제가 현재 완료형 아닙니까?




과거형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과거 완료형도 아닙니다.


즉, 구원은 과거 어느 한 시점에 완료된 상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 그러므로 구원의 문제는 어느 한 순간의 문제가 아니라 지속성을 띠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구원은 이미 끝난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적으로 이루어 나가야 할 성질의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구원과 관련된 동사는 그 어디에도 과거동사를 쓰지 않고 현재시제나 현재완료 시제를 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구원의 시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영접하는 순간 구원이 완성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그 어디에도 우리의 구원에 관한한 과거형이나 완료형으로 기록해 놓은 곳이 전혀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요한 복음 5장 24절을 들고 나옵니다.


그러면서 여기 구원에 관해 과거형으로 기록해 놓지 않았느냐고 반박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has eternal life/현재)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우리말 성경은 과거형으로 번역이 되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처럼 오해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영어성경을 보면 모두 다 현재 완료형으로 번역해 놓고 있습니다.


He has crossed over from death to life. 현재완료/요5:24)).



그러나 영어성경은 여기서도 현재형과 현재 완료형을 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 has eternal life - 현재)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he has crossed over from death to life - 현재완료



헬라어 원어로 현재동사는 진행의 의미를 표현하고자 할 때 사용합니다.


현재완료도 역시 진행의 의미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 복음 5장 24절 말씀도 구원이 완료된 것을 표현한 구절이 아닙니다.


오히려 ‘구원은 지금 계속 진행중이라’ 는 사실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믿는 자에게 구원이 결코 따놓은 당상이 될 수 없음’을 여러 차례에 걸쳐 확실히 증거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 자신도 복음을 전한 후에 버림받을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고전9:27).





또한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도 계속 순종하여 구원을 이루어 나가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언제나 순종한 대로 내가 함께 있을 때뿐만 아니라, 지금과 같이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더 순종하여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시오” (빌2:12, 새번역).





뿐만 아니라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도 ‘구원의 지속성’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딤전4:16, 개역).


“그대와 그대의 가르침을 살피십시오. 이런 일을 계속하십시오. 이렇게 함으로써, 그대는 그대뿐만 아니라 그대의 말을 듣는 사람들도 구원할 것입니다” (딤전4:16, 새번역).





바울은 지금 디모데에게 ‘너의 구원은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라 계속 진행 중에 있으니 자신을 돌아보는 일과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고 견디면 또한 그와 함께 다스릴 것이요, 우리가 그를 부인하면 그도 또한 우리를 부인하실 것입니다 (딤후2:12, 새번역).








바울은 로마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믿는 자도 찍혀 버림받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 (롬11장 22절).






바울은 ‘믿는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지 아니하면 찍혀 버린바가 되리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인자에 거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것을 분명히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지 아니하면 찍히어 버려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지 아니하면, ‘영혼이 구원 받지 못하고 버림받아 지옥에 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잘려(is cut down) 불에 던지우느니라(thrown into the fire)”고 마태복음 7장 19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요한 복음 5장 10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는 법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즉, ‘우리가 찍혀 버린바 되지 아니하려거든, 그의 계명을 지킴으로 그의 사랑 안에 거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만일 구원이 영접하는 순간 단 번에 완성되는 것이라면, 바울과 예수님의 말씀은 틀린 이야기가 되고 맙니다.


구원이 한 번 믿어 완성되는 것이라면, 찍혀 버림받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구원이 단회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찍혀 버림받을 수 있다고 도처에서 증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에게 천국은 따놓은 당상이 아니기에 천국에 들어가려거든 죄를 멀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마가복음 9장 43절 이하에서 믿는 제자들에게 영생에 들어가려거든 죄짓는 일을 경계하라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막9:43-46)





만약 구원을 얻는 것이 믿는 자에게 따놓은 당상이라면 이와 같은 예수님의 말씀은 거짓된 엄포의 말씀이 되고 맙니다.








- 믿다가 타락한 주의 종이 회개하지 않고 죽어 지옥에 온 증언이 있습니다.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울부짖는 소리가 온 공기를 진동 시키고 있었다….


고통 중에 울부짖는 소리가 얼마나 처절했던지 내 가슴이 찢어지는 듯 하였다. …



“캐더린, 여기에는 많은 영혼들이 갖가지 모양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단다.




한 때 복음을 증거하다가 타락했거나 하나님의 부르심에 불순종한 자들은 더 큰 심판을 받고 있느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관 속에 있는 남자는 우리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주님께 사정하기 시작했다. “주님, 주님 저를 내보내 주세요.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 하며 애원하였다. 아래를 내려다 보니 관 속은 피로 뒤 범벅이 되어 있었다.


내 눈 앞에는 한 영혼이 누워 있었으나, 그 영혼 속에는 육체의 것과 똑 같은 심장이 박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뻥 뚫린 심장 구멍 속에서 쏟아진 피들이 사방으로 분출하고 있었다.



악령들이 창으로 그 영혼을 찔러 댈 때마다 그의 심장은 갈기 갈기 찢겨져 나가고 있었다.


“그의 고통은 낮이나 밤이나 쉬지 않고 계속되느니라. 그를 이 관 속에 집어넣은 이는 바로 사탄이다.




그리고 그에게 이런 고통을 가하고 있단다”라고 주님이 말씀하셨다.



이 자는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설교자였다.


한 때 그는 온 힘으로 나를 섬기며 많은 영혼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했었지.



그러나 수년이 지난 후 이 남자는 육체의 정욕과 물질의 욕심에 이끌려 끝내 타락하고 말았단다.


결국은 사탄에게 완전히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는 내가 끼어 들 만한 틈을 주지 않았다.


나는 그가 회개하고 진리만을 전하도록 나의 종들을 그에게 보냈지만 그는 듣지 않았느니라.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삶보다는 인생을 즐기며 사는 정욕적인 삶을 더 좋아했단다.



그는 성경 이외의 것을 가르치면 안 되는 것을 알고 있었다. …… 예수님은 관 속에 있는 남자를 불쌍히 내려다 보시며,“잃어버린 영혼들의 피 값이 이 남자의 손에 다 있느니라. 그들 중 다수는 이 지옥에서 고통 당하고 있단다”라고 말씀하셨다. (Baxter, 1997, pp. 89-91)




캐더린 백스터라는 여자 목사님이 여러 차례 지옥을 다녀와서 간증한 내용 중에 하나입니다. 저의 <너희가 그러고도 천국 갈 줄 아느냐>라는 책 부록에 제가 실어 놓은 내용입니다.







캐더린 백스터의 이 ‘지옥 간증’이 우리에게 깨닫게 하는 사실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를 믿다가도 타락하여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을 가진 자들은 결국 지옥 심판을 면할 길이 없다는 사실 입니다.





알곡 믿음이 아닌 껍데기 믿음의 소유자는 결국 지옥심판을 피할 길이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세레요한도> ‘믿는 자에게 구원은 결코 따놓은 당상이 아니기에 좋은 열매 맺을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고 (마3: 9,10) 경고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하면 ‘믿는 자에게 천국은 결코 따놓은 당상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누가도> ‘믿는 자에게 천국은 결코 따놓은 당상이 아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1장 1`9절입니다.



개역성경에서는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성경은 “너희는 참고 견디는 가운데 너희의 생명을 얻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





<사도요한도> ‘믿는 자에게 구원은 결코 따놓은 당상이 아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도요한도 바울과 다르지 않게 구원을 위해 믿음의 계속성이 필요함을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계14:12)



그 유명한 요한 복음 3장 16절도 자세히 보면, 계속 믿음을 지키는 자에게 장차 영생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여기서 보면, “저를 믿는 자마다”라고 했는데, 동사가 현재동사 ‘BELIEVES’ 를 쓰고 있습니다.


헬라어 현재동사는 현재 진행의 의미를 표현하고자 할 때 사용하는 용법입니다.


그렇다면 그 정확한 뜻은 “계속적으로 믿고 있는 자마다”라고 번역이 되어야만 합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는 말씀은 영어로“SHALL HAVE ETERNAL LIFE”입니다.


그 뜻은 ‘이미 영생을 얻었다’거나 ‘현재 영생을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단지, 미래의 어느 한 시점인 ‘장차 영생을 얻게 될 것이라’는 뜻일 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경의 원래적인 뜻을 모른 채‘영생을 지금 당장 소유한 것’으로 또는 ‘이미 소유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도> ‘믿는 자에게 구원은 결코 따놓은 당상일 수 없다’고 증거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9절입니다. 그는“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영어 NKJV 에서는 ”You are receiving the end of your faith--the salvation of your souls (벧전1:9, NKJV).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믿음의 결국으로 주어지는 당신 영혼의 구원을 지금 받고 있는 중입니다”라는 뜻입니다.





베드로 사도 증거는 ‘믿음의 결과로서의 영혼의 구원은 결코 이미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믿음의 결과로서의 영혼의 구원은 지금 받고 이는 중이라’고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즉, 구원은 믿음을 잘 간직하고 지켜낸 결과로서 얻어지게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믿는 자에게 구원은 이미 얻은 것, 따놓은 당상으로 잘못 오해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다도> ‘믿는 자에게 구원은 결코 따놓은 당상일 수 없다’고 증거합니다.


유다서 1장 5절 공동번역입니다.


“여러분이 이미 다 잘 알고 있는 일이지만 다시 한 번 여러분의 기억을 일깨워 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에집트로부터 구해 냈지만, 그들이 후에 믿음을 저버렸을 때에는 그들을 멸망시키셨다는 사실입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구약 백성들처럼 신약 백성들도 이미 구원의 대열에 참여했을지라도


믿음을 지키지 않으면 궁극적으로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확실한 성경의 증거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도> ‘믿는 자에게 구원은 결코 따놓은 당상일 수 없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히브리서 3장 6절입니다.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하나님의 가족)이라 (히3:6).





또한 히브리서 3장 14절 새번역에서는 이렇게 증거합니다.


우리가 처음 믿을 때에 가진 확신을 끝까지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구원을 함께 누리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히3:14).










결어/ Conclusion



믿는 자에게 구원은 이미 따놓은 당상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결코 온전한 믿음을 유지하기 쉽지 않습니다.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기 쉽지 않습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살기 쉽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 순간 구원은 이미 따 놓은 당상이라고 여기는 것은 심히 잘못된 구원관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구원관 때문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믿음의 대열에서 미끄러져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우리는 누가 뭐라 하더라도 성경이 말씀하는 바를 확실히 붙들어야 할 것입니다.




천국은 주여 주여를 외친다고 해서 가는 곳이 결코 아닙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아름 다운 믿음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 가는 곳입니다 (마7:19).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요15:6), 는 주님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십시다.





그리하여 아름다운 열매 맺어 종국에 구원받고 영생 천국에 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할렐루야! 아멘


김경규목사(라이프 비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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